떠돌이 사자와 마흔의 무게




아프리카의 대초원을 헤매는 떠돌이 숫사자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한때 무리의 중심에 서 있던 그 사자는 이제 경쟁에서 밀려나 홀로 정처 없이 걷고 있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고독과 체념이 담겨 있고 발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결국 그는 이 광활한 초원 어딘가에서 고독하게 삶을 마감할 것입니다. 이 사자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넘어서며 저는 점점 더 그 사자와 닮아가는 기분입니다.
마흔이 넘으니 세상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무겁습니다. 젊었을 때는 세상이 넓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었습니다.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좇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빛나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저를 평범한 소시민으로 만들었고 사회적으로 큰 성공은커녕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사랑하는 부모님께 제대로 된 효도를 하지 못했다는 자책입니다.
부모님은 제게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어린 시절 그분들은 저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였고, 어떤 어려움도 막아주는 방패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울타리는 점점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은 젊은 시절의 총기로운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자꾸만 잊고, 혼동하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가십니다. 이제는 제가 그분들을 돌봐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책임을 온전히 감당할 능력도 여유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부모님께 늘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면서도 막상 그분들과 마주하면 답답한 마음이 치밀어 오릅니다. 괜히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리고, 그러고 나면 스스로가 너무 미워집니다. 어째서 저는 이렇게 못난 어른이 되었을까요?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문합니다. 어째서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했을까? 어째서 더 성장하지 못했을까? 남에게 억울한 일을 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자위해봐도 정작 제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는 건 또 다른 죄입니다. 가족을 호강시켜주는 사기꾼보다 제가 나은 게 과연 무엇일까요?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 보이고 제 마음은 갈수록 울적해집니다. 오늘 또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보니 지난번보다 금액이 더 올랐습니다. 수입은 마땅치 않은데 세상살이는 왜 이렇게 팍팍해지는 걸까요? 숨이 턱턱 막힙니다.
아프리카 대초원의 떠돌이 사자. 경쟁에서 밀려난 그 사자의 모습이 왜 이렇게 제 모습과 겹쳐 보이는 걸까요? 한때는 당당히 세상을 누비던 존재였지만, 이제는 낙오되어 홀로 길을 걷는 그 모습. 저도 그렇게 세상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도 한 가지 다짐하는 건, 이 무거운 세상 속에서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비록 큰 효도는 못 하더라도, 그분들 곁에서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이 팍팍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마흔이라는 나이, 혹은 그 언저리에서 느끼는 삶의 무게는 어떤 모습인가요? 혹시 저처럼 떠돌이 사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 무게를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기를, 우리 모두가 조금 덜 외롭기를 간절히 바랍니다.